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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예기' 권명화 명인 "이제 춤맛 알았으니 계속 춰야지" 덧글 0 | 조회 70 | 2020-12-11 08:52:01
여리네  

대구 무형문화재 9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권명화(85) 명인은 이 시대 마지막 예기(예술인 기생)다. 대구 대동권번 출신으로 채(회초리)를 맞으며 춤과 소리를 혹독하게 배웠다. 예기들은 얼굴 하나 믿고 술상에 앉는 ‘나무기생’과 스스로 구분을 지었다. 자신들을 ‘채 맞은 생짜(기생)’라고 불렀다.

권번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예를 익힌 마지막 ‘채 맞은 생짜’인 권 명인이 오는 20~21일 한국문화재재단 주최로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몌별 해어화’ 공연을 펼친다. 2013년 ‘해어화’ 공연의 후속편 격이다. 6년 전 공연에는 전북 최고 춤꾼이었던 군산 소화권번 출신 장금도(1928~2019), 소리가 탁월했던 부산 동래권번 출신 유금선(1931~2014) 명인이 함께 무대에 섰는데 그사이 두분이 세상을 떠났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의 해어화는 기녀를 가리키는 말로, 올해 공연 제목에는 ‘소매를 잡고 작별한다’는 뜻의 ‘몌별’을 붙여 앞서간 두 명인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았다. ‘해어화’를 연출했던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이 이번 공연 연출도 맡았다.

권 명인 “스승 가르침에 연구 보태기교 없이 묵직·단순한 춤 전수…피는 못 속인다고, 손녀도 춤 춰요”

12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권 명인과 진 이사장을 함께 만났다. 권 명인은 무엇보다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 당시 예기는 대학원 이상 공부를 한 사람과 비슷했지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로 피란을 갔다. 피란 간 집 앞이 대동권번이었고,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사로잡혔다. 16살 무렵 아버지 도장과 월사금을 훔쳐 권번에 등록하고 춤을 배웠다. 기생이 저물던 시대에 권번에 들어간 그는 춤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무용대회에서 승무를 춰 최우수상을 받았다. 권번 스승 박지홍(1889~1958)은 그를 수양딸로 삼고, 춤과 소리를 가르쳤다. 권 명인은 인력거 타고 요릿집에 가서 춤 한판, 소리 한가락 뽑아내기보다 스승을 따라 춤의 전승을 도왔다.

대구에선 소문난 춤꾼이었던 권 명인을 서울 무대에 알린 게 진 이사장이다. 전통공연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며 초야에 있는 뛰어난 예술가들을 찾아다니던 진 이사장은 1998년 무렵 권 명인을 만났다. 진 이사장은 “대학에서 하는 작품들도 아름답지만 초야에 있는 한량, 무당, 기생들의 재주가 빼어났다”며 “돗자리 하나 깔아두고 사람들을 휘어잡는 그 힘에 놀라 예기들을 한 30년간 찾아다녔다”고 했다. “권 명인은 권번에서 기생을 길러내던 끝물에 배우신 분인데 마치 춤이 몸속에 고인 음악이 흘러나오는 과정같이 느껴지더라고요. 경상도 사람들 말투가 그렇듯 춤은 무뚝뚝해요. 잔가락으로 부드럽게 수식하지 않고 동사·형용사·수사 없이 말 뼈대 이야기하듯 움직이는데 거기에 묘미가 있어요.” 권 명인도 진 이사장을 처음 만난 때를 떠올리면서 “그때는 총각이었는데 지금은 백발이 됐다. (내 춤이) 쓸 만해서 부르면 한두 차례 더 (공연하러) 오겠다”며 웃었다.

6년 전 승무를 췄던 권 명인은 이번엔 소고춤을 선보인다. “무대에 오르면 앵기는 날이 있어. 소고춤은 그날의 몸 상태, 관객의 호응 등에 따라 즉흥적으로 달라져요. 반응 좋으면 더하고 별로면 ‘안녕히 계시소’ 하고 들어올 거고. 신나면 온 천지 돌아다닐 거고.”

공연 연출 맡은 진옥섭 이사장“키는 작은 할마시가 부풀어올라무대 장악하는 힘 보시게 될 것”

박지홍류 춤의 마지막 전승자인 그는 제자 양성에도 적극적이다. 서울, 부산, 대구를 기차 타고 오가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권 명인이 말하는 박지홍류 춤은 “기교를 안 부리고 묵직하고 단순”하다. “‘야, 이놈들아. 손을 천금을 세면서 올려라(천번을 세면서 손을 천천히 올리라는 뜻)’ 했던 스승의 말을 난 지금도 귀에서 놓지 않고 있어요. 선생님 뿌리를 안고 내가 연구를 하면서 제자들에게도 춤을 가르치는 거지.” 그는 현대화한다면서 전통에서 비껴난 요즘 춤과 춤꾼들한테 아쉬움이 많다. “우리는 장구를 치고 구음하면서 춤을 했는데 요즘은 녹음테이프 탁 틀어놓고 춰요. ‘얼쑤’ ‘좋다’가 들어가야 하는데 음악은 음악대로 돌아가고, 춤은 춤대로 하니까. 소고 할 때, 살풀이 할 때 구음(춤을 반주하는 입으로 내는 소리)도 다 다르거든. 구음이 없으면 춤이 맛대가리가 없어.”

권번 시절 소리를 배우면서 목이 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똥물까지도 마셨다는 그는 여전히 춤추는 게 좋다고 했다. “이제 철 들어 춤맛을 알고 빛 보려고 하니까 나이가 많아.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춤은 계속 춰야지. 피는 못 속인다고 우리 딸과 손녀도 춤을 춰요. 딸에겐 내가 배운 걸 다 가르쳤어.”

이번 ‘몌별 해어화’ 공연은 권 명인의 소고춤에 앞서 국수호의 승무,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 정명희의 민살풀이춤 등이 무대를 채운다. 진 이사장은 “장금도 선생이 올해 초 돌아가시고 이제 예기는 한분 남았는데 이분도 그냥 보내드릴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키는 작은 할마시가 솜에 물 탄 것처럼 부풀어 올라 무대를 장악하는 힘을 보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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