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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가슴 시원해지는 일 좀 없나 덧글 0 | 조회 72 | 2020-12-04 23:38:22
강봉멍  

가슴을 뻥 뚫어 놓은 이 작품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연말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고 볼 수도 있고, 잔인하다고 볼 수도 있다. 헨리 무어가 추상미술로 향하는 변화 속에서 택했던 독특한 방식의 작품이다.

추상미술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추상하다’란 ‘abstract’가 ‘뽑아내다’ ‘축약하다’라는 뜻인 데서 유래한 것이다. 대상에서 본질적이며 핵심적인 속성을 축약해서 단순하고 함축적인 형태로 나타내는 미술을 의미한다. 둘째는 작품 그 자체를 주목하게 하기 위해서 구성요소인 선, 색, 형태, 양감, 질감 등의 형식적 관계가 강조되는 미술을 말한다.

무어는 누워 있는 인물이나 어머니와 아이 등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다루었다.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애와 휴머니즘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는 그의 작품 방법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조각의 전통적인 방법인 깎아 내기나 붙이기가 아닌 구멍을 뚫고 파내는 색다른 방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다.

이 작품은 누워 있는 여인상인데, 돌덩어리를 파내고 구멍 뚫는 방법으로 여인의 모습을 단순화하고 축약시켰다. 작품 내부도 여기저기를 파내고 구멍을 뚫어 변화를 줬다. 누워 있는 강의 여신이 연상될 수도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깎이고 침식된 돌의 흔적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돌의 결을 잘 살려 놓은 점이 재료 자체에 비중을 두고, 내용보다 작품의 형식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무어가 강조한 또 다른 점은 선과 형태와 공간들의 관계이다. 둥글고 단일한 덩어리로 연결됐지만, 파내고 구멍을 뚫어 작품 안에 품고 있는 공간과 작품을 둘러싸는 공간을 대비시켰다. 때로는 불룩하게 때로는 움푹하게 파인 면들의 가장자리 곡선으로 우아함을 나타냈고, 작품 안의 공간을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까지 구성요소로 끌어들였다. 이것들이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면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모두 모여서 작품 자체의 형식을 만들면서 하나의 추상조각이 됐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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