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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레고랜드라는 이름의 기회비용 덧글 0 | 조회 75 | 2020-12-03 02:12:37
숨비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잘 나가던 사업을 접어야 하는 전략적 선택이라면 포기한 가치가 새 사업이 창출하는 이익보다 낮아야 후회가 없다. 공공의 자산과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특히 그렇다.

이런 기회비용 이론을 강원 춘천시 의암호에 자리한 중도에 10년째 추진 중인 레고랜드 사업에 적용해보자. 인공섬인 중도가 시민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강원도가 100만㎡가 넘는 도유지와 혈세 수천억원을 투자한 이례적 사업이기 때문이다.

강원도가 레고랜드를 만들겠다며 해외업체와 손을 잡은 건 2011년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테마파크와 호텔 등이 들어서면 연간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캠핑명소로 떠오른 중도의 가치를 과감히 포기해도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장밋빛 전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강원도는 레고랜드가 들어서면 일자리 1만개가 생기고, 춘천이란 도시를 세계적인 명소로 도약시킬 것이라고도 확신했다.

그런데 10년이 흐른 지금 이런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백만 인파를 불러 모을 것이라던 테마파크가 문을 열기는커녕, 달갑지 않은 논란으로만 유명세를 탔다. 퍼주기 불평등계약 논란을 시작으로 시행사 뇌물비리, 시공사 교체에 따른 내부 항명사태 등 하루가 멀다고 잡음이 이어졌다.

10년 동안 사업이 표류한 사이 강원도가 포기했던 캠핑은 '핫'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감성 캠핑에서 글램핑, 차박까지 여러 방식으로 자연과 함께하려는 캠퍼들이 눈에 띄게 늘면서 예전의 중도가 그리운 상황이 됐다. 수천억원 투자 없이도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기회가 레고랜드 사업이란 허상에 사라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고랜드 개장 후 강원도가 받게 될 수익률이 30.8%에서 3%로 급감했다는 소식마저 들려왔다. 테마파크 개장 시기도 내년 상반기에서 2022년으로 1년 더 미뤄졌다. 당초 2014년 개장을 공언한 이후 무려 일곱 번째 연기 소식이다. 이렇게 10년간 '희망고문'이 이어지면서 호반의 도시를 대표하던 관광지를 포기한 대가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행정 신뢰도에 흠집이 난 것 또한 레고랜드가 야기한 엄청난 손실이다. 강원도는 공공의 자산이 들어간 사업임에도 '비밀조항'을 이유로 계약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다.

그런데도 강원도는 이름만 달리해 레고랜드 착공식만 세 번이나 개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굳이 이솝우화의 한 장면을 꺼내지 않더라도,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믿기 어려워졌다는 볼멘소리가 쏟아지는 이유다.

이대로 가다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와 용인 경전철, 월미도 은하레일처럼 혈세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지방자치 흑역사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다. 견제장치 없이 추진된 사업이 혈세를 축내지 않았는지, 밑지는 거래로 막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한 것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할 때다.

수백만 관광객과 수십억 세수를 기대했지만,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레고랜드가 아직도 유효한 사업인지 사람들은 묻고 있다. "정말 괜찮은 사업 맞나요 "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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