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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석의 퍼스펙티브] 지구 기온 0.5도 상승, 더 크고 빈번한 팬데믹 부른다 덧글 0 | 조회 81 | 2020-12-03 00:53:09
박준혁  

━ 감염병 위기 키우는 지구온난화

2015년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파리협정에 195개국이 서명했다.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가 이미 1도 증가했으니 이제 0.5도의 여유밖에 없다. 0.5도는 작아 보이지만 극한 이상 기후, 생태계 붕괴, 감염성 질환 발생으로 이어져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미친다. 지구온난화는 해양보다 육지에서 더 뚜렷하다. 겨울철에는 극지방에서, 여름철에는 중위도 지역에서 가장 심하게 일어난다. 우리나라도 여름에는 폭염과 극단적 강수, 겨울에는 혹한이 더 자주 발생한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발간한 2018년 보고서는 0.5도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고한다. 0.5도 지구온난화는 생물 다양성 손실을 가속해 곤충의 12%, 식물의 8%, 척추동물의 4%가 사라진다. 초록바다거북은 해변 모래에 알을 낳는데, 모래 둥지의 온도에 따라 부화하는 새끼의 성이 결정된다. 30도 이상에서는 암컷만이 태어난다. 온도가 증가하면 수컷이 없어서 초록바다거북은 멸종한다.

실제 모든 생명체는 지구온난화에 민감하다. 생물 다양성 감소는 주변의 동물에 선택압으로 작용해 병원체들이 이들 동물로 농축되고 동물들의 활동 범위도 변화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동물-동물, 동물-사람 간 접촉이 이루어져 감염성 질병이 생긴다. 새로운 병원체의 약 60%는 이런 방식으로 탄생한다. 모기·진드기와 같은 운반체 매개 질병도 온난화로 증가한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불규칙한 강수는 전염에 취약한 지역을 크게 확장하며, 빙하 속 사체에 들어있던 오래된 병원체가 과거로부터 소환된다.

열대·북극서 밀려오는 새 병원체

매년 7억 명이 감염되는 말라리아·뎅기·웨스트나일·치쿤군야·황열병·지카 바이러스 등은 모기에 의해 옮는다. 2017년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에 따라 육지 종의 서식처는 10년에 17㎞의 속도로 극지방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도 아열대 기후로 바뀌면서 모기의 활동 시기가 늘고 있다. 늦가을에도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친다.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모기가 매개하는 감염성 질병이 풍토병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의 또 다른 위협은 빙하 속에 묻혀있던 과거 병원체에 의한 전염병 가능성이다. 최근 시베리아 온도가 35도 이상 올라가는 것이 일상적 현상이 됐다. 빙하가 녹으면서 1년 동안 노출되는 세균과 바이러스 수를 합치면 10조에 1억을 곱한 10해에 달한다. 2014년에는 3만 년 된 바이러스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빙하가 녹아내리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최근 1만5000년 전에 형성된 히말라야 빙하에서 33종의 바이러스가 발견됐는데 이 중 22종은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은 신종이었다. 2016년 여름 시베리아 지역에서 탄저병이 발생해 순록 2300여 마리가 죽고, 주민 8명이 감염됐다. 빙하가 녹으면서 오래전 탄저균에 감염된 동물 사체가 노출된 것이다. 바이오 테러에도 이용될 수 있는 탄저균은 얼음 속에서 수백 년 동안 생존할 수 있다.

지구에는 8개의 대륙 간 철새 이동 경로가 있다. 우리나라는 시베리아·알래스카에서 호주로 이어지는 철새 이동 경로에 속한다. 알래스카·시베리아에서 남하하는 철새들에 의해 새로운 감염성 질환이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 철새는 여행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이들 병원체가 사람에게 감염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미지의 병원체라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오래된 미생물이 살아난다면 현재 인간들은 이에 대한 면역 체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팬데믹으로 번질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관심이 덜하지만, 철새에 의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한반도 전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가금류와 가축들이 살처분되곤 한다. 코로나19 이전에 가장 최근에 발생해 50만 명의 사망자를 낸 ‘2009 인플루엔자 팬데믹’도 조류·돼지·사람 인플루엔자가 재조합돼 일어났다.

면역력을 약화하는 지구온난화

기후 변화는 인체 면역과 병원체와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포유류들은 주변 환경보다 높은 체온을 유지한다. 낮은 온도에 적응된 미생물은 따뜻한 포유류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37도 체온은 병원체에 대한 천연 ‘열’ 장벽이다. 병원체가 침입하면 면역작용으로 열을 발생시켜 체온이 1~2도 증가한다. 37도 천연 장벽 위에 더 높은 장벽을 쌓는 것이다. 지구 온도가 증가하고 병원체들이 이에 적응하면 핵심 방어 무기인 ‘열’의 효력이 무뎌진다.

코로나19의 숙주인 박쥐는 체온을 40도까지 유지할 수 있고, 박쥐 바이러스들도 40도에 적응돼 있다. 박쥐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사람 체온이 1~2도 올라간다 해도 이들 바이러스는 40도까지 적응되어 있어 ‘열’에 의한 면역 무기를 견뎌낸다. 코로나19가 기존 항바이러스 치료제에 더 높은 저항성을 나타내는 이유일 수도 있다. ‘열’ 장벽 때문에 냉혈 동물에서 직접 사람으로 병원체가 전파되는 것은 어렵다. 만약 양서류와 파충류 같은 냉혈 동물들이 지구온난화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이들이 새로운 병원체의 숙주로서 팬데믹의 온상이 될 수 있다. 또 고온 현상이 지속하면 수면 부족, 식욕 저하, 스트레스가 증가하여 면역시스템이 약해진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온에서 키운 생쥐는 독감 바이러스 감염에 더 취약하다.

코로나19도 지구온난화도 지금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코로나19는 즉각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무섭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나무늘보처럼 느리게만 보이고 책임 소재도 모호하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에서 모범적인 방역국이지만, 백신 연구개발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백신은 장기적인 기초연구의 산물이다. 감염성 질환에 대한 그동안의 낮은 인식과 투자 규모를 고려할 때, 백신 주권 국가로 가는 길은 멀게 느껴진다. 코로나19를 교훈 삼아 감염성 질환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처 능력을 향상해 다음 팬데믹에서는 백신 주권 국가로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 영구 동토에서 부활한 ‘1918 독감 바이러스’

18개월 동안 약 1억 명의 사망자를 내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팬데믹으로 기록된 1918년 독감 바이러스는 알래스카의 한적한 브레비그 미션 마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도착한 지 5일 만에 이누이트족 주민 80명 중 72명이 사망했다. 아이오와대에서 미생물학을 공부하던 요한 헐틴은 1918 바이러스 정체 규명을 일생의 과업으로 정했다. 그는 우연히 바이러스 학자로부터 극지방의 영구동토에 묻힌 희생자의 사체에 바이러스가 보존돼 있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헐틴은 1951년 알래스카 이누이트 족장의 허가를 받아 마을 공동묘지에 묻힌 사체로부터 폐 조직을 분리해 연구실로 돌아왔다. 다양한 실험 기법으로 바이러스 부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로부터 46년이 지나 72세의 은퇴자가 된 헐틴은 과학 기사를 읽다가 미국 국립감염병연구소 병리학자인 제프리 토벤버거가 생물 조직에서 바이러스 유전물질을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를 이용해 1918 독감 바이러스의 비밀을 추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헐틴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 토벤버거는 어디서 1918 독감 희생자 사체를 구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헐틴은 1997년 은행 잔고 3200달러를 털어서 다시 알래스카 묘지를 찾았다. 2m 깊이에서 75년 동안 잘 보존된 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체는 비만 여성의 것이었고 과도한 지방 조직과 영구 동토층 덕분에 폐가 부패하지 않았다. 2005년 토벤버거는 정부의 엄격한 관리 아래 폐에서 1918 독감 바이러스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

1918 독감 바이러스를 주입한 생쥐들은 6일 이내에 모두 죽었으나 현재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를 주입한 생쥐는 멀쩡했다. 1918 스페인 독감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입증한 것이다. 또 연구진은 1918 독감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옮아왔고 돌연변이를 통해 사람에 전파됐음을 규명해 독감 바이러스 분야의 신기원을 열었다. 훗날 이러한 정보를 이용해 연구자들은 백신을 개발했고 1918 독감 바이러스의 재창궐 가능성을 차단했다.」

안광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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